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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속으로

창덕궁의 가을






돈화문(敦化門)
창덕궁의 정문이다. 다른 궁과 다른점은 정전과 축이 틀어져있다는 것이다. 문앞으로는 종로로 향하는 대로가 정면에 배치되고 금천교를 지나 1997년에 복구한 진선문에 이르면 왼쪽에 인정문과 맞은편 동쪽에 위치한 숙장문이 사다리꼴의 부정형으로 인정전 앞뜰을 이루고 있다. 기존 궁궐의 형식과는 달리 자연스런 배치를 채택한 것이다.




금천교
교각을 2개의 홍예(虹霓)로 구성하였는데 물 속에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돌로 홍예를 틀었으며 양쪽 교대(橋臺)를 석성(石城)처럼 쌓았다. 중앙에 홍예가 모이는 곳에 큼직한 홍예 기석(基石)을 놓아 지복석(地覆石)을 삼았으며, 하마(河馬) 형상의 석수(石獸)를 배치하였다.

진선문

창덕궁에는 궁 정문에서부터 정전에 이르는 주출입선에 세 개의 문이 세워져 있다. 세 개의 문은 돈화문, 진선문, 인정문인데, 돈화문은 제일 바깥에 위치한 창덕궁의 정문이고, 다음 금천교를 건너 만나게 되는 진선문은 외행각 주출입문이며, 마지막 인정문은 내행각 주출입문이다. 이처럼 진선문은 창덕궁 주출입선상에 위치한 중문이므로 문의 전후로는 어도를 두었다. 진선문은 남북축의 돈화문이나 인정문과는 달리 동서축으로 세워져 있어, 돈화문으로 들어와 북측으로 진행하다 동측으로 꺽어서 금천
교와 진선문을 지나게 되며 다시 북측으로 꺽어서 인정문으로 들어가게 된다. 외행각의 동측 진선문에 대응하는 위치에는 숙장문이 세워져 있어 진선문과 함께 동서축을 이루고 있다. 진선문 북측 행각끝에는 동으로 정청(政廳)을 연결시키고 남측 행각끝에서는 동으로 내병조(內兵曺)가 연결된다.









낙선재

『궁궐지』에서는 창경궁에 속한 건물로 기록되고 있으나 근래에는 창덕궁에서 들어가도록 되어 있는 건물로 창덕궁의 동남쪽에 창경궁과 이웃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승정원 일기』와 낙선재 상량문에 헌종 13년(1847)에 건립된 것으로 기록된 건물로서 국상을 당한 왕후와 후궁들이 거처하기 위하여 세워진 것으로 전하고 있다. 순조 28년(1828)에 건립된 연경당보다 20년 뒤에 세워진 곳으로 궁궐에 조영되는 주거 건축술로서 그 구성의 법식과 보존 상태가 훌륭하며, 특히 지형과 환경에 따라 자유 분방하며 다양한 건축물을 보여 주고 있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건물이다.




부용정

영화당에서 과거를 보고 급제를 하면 주합루에 올라가 왕실도서관의 수만 권의 서책을 읽으면서 능력을 함양하게 된다. 그때 그 일을 축수해 주는 자리가 부용정이다. 부용정의 평면은 亞자형이면서 변화를 주어서, 작은 건물이지만 그 구성이 복잡해 보인다. 한쪽의 두 다리를 연못 속에 담그고 섰다. 연꽃에서 아름답게 피어난 한송이 꽃과 같은 정자를 꾸민 것이다. 정조 때 개건했는데, 구조로 보아 특이한 정자이다.

동쪽에 열린 문을 열고 들어서면 불발기창이 달린 창과 외짝의 문이 있다. 그 안에 들어서면 단문이다. 필요할 때 문짝을 열어 걸면 온 천지가 한꺼번에 정자 안으로 달려드는 듯하다.


부용지

부용지는 장방형 연못으로 못 가운데에는 직경 9미터의 원형 섬이 조성되어 있다. 원래 이곳에는 숙종 때부터 연못이 있었으며, 1707년 지금의 부용정 터에 택수제가 건립되었던 것을 1792년에 정조가 택수제를 헐고 부용정을 개건한 것이다.
부용정 옆에는 석분위에 아름다운 괴석(怪石)이 심어져 선산을 상징하고 있다. 부용지에는 수련(睡蓮)이 심어져 있고 북쪽의 주합루와 동쪽의 영화당, 남쪽의 부용정이 수면에 오색아롱진 그림자를 드리우면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이 수놓인다.

부용지의 수원(水源)은 지하에서 솟아오르며, 비가 올 때는 서쪽 계곡의 물이 용두의 입을 통하여 입수하게 되어 있다. 못 속에는 잉어나 붕어 등의 물고기를 길러 임금이 낚시나 뱃놀이를 했던 곳이다. 동남쪽 호안(護岸)에는 이채롭게 물고기 한 마리가 조각되어 있다.






영화당

조선왕조에선 옛 제도에 따라 국가의 동량(棟梁)을 뽑는 일을 과거제도에 의존하였다. 공개시험으로 우수한 인재를 발탁하는 방법이었다. 지방에서 초시에 합격한 사람들만 골라 임금이 친히 참석한 자리에서 시험을 치게 하였다. 이를 전시(殿試)라 하는데, 영화당은 그런 과거를 보는 장소였다. 원래 이곳은 임금이 신하들과 꽃구경을 하고 시를 지으며 놀던 곳이다. 정조 때부터 이곳을 과거장으로 사용하여, 영화당에는 시관이, 그 앞 춘당대에는 응시자들이 자리잡고 과거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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